블로그 개설 이후로 향수 테스터는 처음으로 당첨되었다. 사실 향수는 이벤트도 잘 없는데, 향수가 색조 화장품 만큼 누구나 필수품으로 쓰지는 않는 탓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좋은 컬렉터님들께서 기습으로 나눔해주시는 시향분 외에는 그냥 직접 매장에서 시향지에서 예선, 손목에 본선을 테스트 해보는 편이다. ) 최근 2-3년 사이에 이 판세가 완전히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은 조말론 코롱류가 대세인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신제품이 나와도 색조화장품처럼 핫아이템이 되기보다 기존의 인기향수가 계속해서 인기를 구가한다. 5년-10년 후면 향수도 색조처럼 신제품 런칭날 동나는 사태가 벌어질려나?
장소협찬: 일랑일랑과 상관없고 코모로섬과 멀리 떨어진 한국의 어느 화단
해외보다 한국에서 먼저 런칭된 2013년도판 딥티크 신작 오 모헬리-
매년 향수 신제품이 2가지 정도 나오는데, 올해는 eau de 34가 나왔길래 으례 가을이나 겨울쯤에 신제품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곧바로 한국단독으로 깜짝 출시되었다. 이벤트 참여했는지 까먹고 있을 무렵 떡하니 찾아온 행운이었다. 돌직구를 한번씩 날리는 블로그라서(...) 뽑힌 게 신기하지만 어찌되었건 향수싸이트에도 평이 거의 없으므로 남들과 다른 독자적인 컨텐츠(!)를 담아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
동봉된 옆서는 모헬리섬의 풍경(좌)-일랑일랑 클로즈업 샷(중)-일랑일랑 꽃잎을 수확하는 현지주민(우)에 일러스트를 덮어쓰기로 오발마크, 나비, 일랑일랑 꽃잎이 그려져있다. 시향을 몇 번 하다가 문득 옆서사진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오 모헬리에 사용된 주 향조 원산지가 코모로섬인데, 아프리카 옆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4개의 섬으로 된 코모르 제도가 있고, 그 중 1개는 프랑스령이고, 나머지 3개가 코모르 공화국이다. 바닐라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고 가보진 않았으나 아프리카 최빈국이라고 한다.
정확한 위치를 찾아봤더니 4개의 섬중 가장 작은 왼쪽 아래가 모헬리라는 섬이다. 이곳이 일랑일랑이 많이 피나보다. 오른쪽 하단이 아직도 프랑스령이 Mayotte 섬이고, 그랑드코모르/모헬리/앙주앙 세개의 섬이 공화국이다. (이상 궁금해서 위키백과 참조)
재질이 유리라서 화장품 생각하고 덮개 천을 쳐박아두면 곤란한 순간이 올지도 모름. 함께 움직여야 할 운명임
일랑일랑이 주된 향조를 이루는 향수는 시대를 불문하고 까사렐의 아나이스아나이스가 대표적인데 이 향수를 예전에는 왠지 멀고먼 향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자스민처럼 약방의 감초마냥 들어간 향수가 많아서 익숙하기는 하지만, 단독으로 내놓은 향은 아나이스아나이스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페리앨리스 360도 일랑일랑 향기의 대표격이었는데, 20대에는 아나이스아나이스와 함께 뿌리기 어려운 향으로 분류했었다. 그무렵 샤넬 No.5는 뿌리고 다녔는데(여기도 일랑일랑 들어가 있음), 이상하리만큼 일랑일랑 주 향수는 감히 넘보지 못할 산이었던 것이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향수 중에서는 피에르 발망의 이브아르도 일랑일랑이 들어간 아이보리 비누향이다.
아뭏든 쉽지만은 않은 향기를 딥티크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조향사는 Olivier Pescheux로 베티베리오와 코롱 4개의 물(헤스페리데,네롤리,타로코,로드로), 34번가 시리즈(생제르망, 로드34, 오 파티큘리에)를 만든 사람으로 2013년판 두가지가 모두 이 사람 작품이다. 혹시 딥티크의 올 해의 조향사?
20ml의 일러스트 디자인은 일랑일랑 꽃잎을 줄줄이비엔나로 엮어놓았고, 100ml는 잎사귀가 나풀거리는 일러스트로 포장되어 있다.
Fragrance Notes

향수싸이트에 들어가보니 플라워노트,일랑일랑, 패츌리, 핑크페퍼,생강, 베티베,벤조인, 인센스인데 탑/미들/베이스의 구분없이 이렇게만 나와있어서 아직 노트 정리 전인가 싶다. 혹시나해서 딥티크코리아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노트가 나뉘어져있다. 얼쑤!
• 탑노트: 페퍼우드, 핑크 페퍼콘
• 하트노트: 일랑일랑 꽃, 암브레트 시드
• 베이스노트: 파츌리, 버티버, 통카 빈
하트노트의 암브레트 시드는 르 라보에서 암브레트향기를 여리여리하면서 기분좋은 향이라고 느꼈던 바, 솔솔 올라오는 기분좋음의 이유가 설명된다.
처음의 일랑일랑은 시원한 바람에 실려온 일랑일랑의 은은한 느낌이 그대로 표현된 거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탐하는 나비 정도 거리에서 일랑일랑 꽃밭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러다 급기야 사진속의 일랑일랑 꽃잎을 따 놓은 소쿠리 속으로 풍덩! 세개의 옆서 사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딱 저런 느낌으로 탑노트-미들(하트)-베이스로 전개되고 향기가 갈수록 강해진다.
사진처럼 우디 그린의 신선한 첫 느낌도 딱 먼발치에서 바라본 일랑일랑 노트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스파이시한 페퍼 느낌도 나고 다행스럽게도 베티베가 도드라지진 않아서 스킨케미스트리는 무리없이 잘 넘어간다. 벤조인과 합세해서 은근히 지속력이 강한 향기가 된다.
바르자마자 생각이 나는 건 " 이거 무슨 향이었지? 써보거나 알았던 어떤 향수랑 상당히 느낌이 비슷하다"는 건데,
뭔가 고전적인 90년대 향수를 뿌린 느낌? 가물가물...아련한 향취만큼이나 금방 안떠오른다.
익숙하면서 기억이 나는 향기라는 것은 예전 향수에 일랑일랑이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물론 오모헬리는 이전의 향수보다 훨씬 부드러운 일랑일랑에 속한다.
물파스 말고는 처음 써보는 롤온타입 향수
휴대용 케이스가 마음에 드는데, 전 라인 공병 소품으로 나오면 어떨까싶다. 어차피 향수까페에서 소분이 많은데 차라리 케이스공병이 나오면 넉넉하게 20ml로 소분할 수 있고, 각제품의 이름과 일러스트가 새겨있다면 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딥티크의 인기는 세련된 향기 이외에도 일러스트가 들어간 디자인이 한 몫 했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니까.
오 모헬리는 처음 느낌이 크게 강하지 않아서 은은하고 약한 향수라고 섣불리 판단해서 양을 많이 해서 뿌리거나/바르면 베이스노트가 남을 무렵 일랑일랑 꽃잎 사이에 몸이 낀 상태로 오후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그로인해 예상하지 못한 울렁거림이 생길 수도 있다. 은근히 뒷심이 있는 게 매력인 향기인데 완급조절이 필수이다. 그 옛날의 아나이스아나이스나 패리앨리스360은 조절하기엔 너무 가혹했지만, 롤온타입의 장점이 스프레이 1회 분사량보다 더 많이 뿌릴수도 더 적게 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한 느낌 상태를 잘 살려서 그대로 놔두어야 바람에 실려온 일랑일랑 향기가 하루종일 기분좋게 풍겨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 그렇다는 거지-개인적으로 롬브르단로가 너무 달게 느껴져서 힘들지만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제품이기에- 사람따라 그 미묘함의 차이는 제각각일 것이다. 양과 농도 조절을 잘 해서 머리 안아프게 잘 만든 향기이다.
*딥티크의 플라워 시리즈가 다른 딥티크 라인에 비해서 무난한 향기인데, 딥티크가 특이하긴한데 뭔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은 일반향수와 딥티크향수 중간지점에 이 플라워 라인이 잘 맞을 듯하다. 코롱같은 케이스에 아직 오 로즈와 오 모헬리 두가지만 나와있더라.
**화이트플라워류만 주구장창 뿌리다가 오랫만에 옐로우플라워 들어가니까 새롭다. 예전에 알던 향기가 2010년대 스타일로 딥티크 특유의 청아하고 맑은 톤으로 나와서 트렌드에 걸맞는 느낌이다. 3번째 플라워 시리즈는 피오니나 아이리스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thanks to